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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예랑 대표] 서울경제 인터뷰

2020-02-07

 

스포츠 에이전트(대리인)의 삶을 다룬 톰 크루즈 주연의 영화 ‘제리 맥과이어’에는 이런 장면이 나온다. 경기 중 뇌진탕을 일으켰다가 병실에서 겨우 정신을 차린 한 선수가 자신의 에이전트인 맥과이어를 보자 갑자기 흥분한다. 다음 경기를 뛰어야 보너스를 받을 수 있는데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것이다. 병문안을 마치고 돌아서는 맥과이어를 선수의 어린 아들이 복도에서 멈춰 세운다. 꼬마는 벌써 네 번째 뇌진탕인데 이제 좀 말려야 하는 것 아니냐고 걱정 어린 물음을 던진다. 맥과이어는 탱크 다섯 대가 와도 끄떡없는 사람이 네 아빠라고 안심시키지만 꼬마가 일그러진 표정으로 가운뎃손가락을 드는 욕설을 날리자 이내 회의감에 빠진다.

영화 초반에 나오는 이 장면은 이예랑 리코스포츠에이전시 대표가 가장 좋아하는 신이다. 출장 가는 비행기 안에서, 머리가 복잡해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을 때, 모처럼 얻은 휴식 시간에 습관처럼 이 장면을 튼다. “처음 이 일에 뛰어들었을 무렵에는 좋은 에이전트라면 저 상황에서 ‘스톱’을 얘기할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경력이 쌓일수록 ‘과연 그게 맞는 걸까’라는 의문이 들면서 점점 더 어려워지는 거 있죠.”

이 대표는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와 국내프로야구(KBO 리그) 공인 에이전트 자격을 모두 취득한 최초의 스포츠 에이전트다. 지난 2015년 김현수의 MLB 볼티모어 구단 계약과 2018년 강정호의 피츠버그 계약 성사 등을 통해 이름을 알렸고 최근에는 KBO 리그 정상급 2루수 안치홍의 롯데행을 도와 또다시 화제가 되고 있다. KBO 최초로 계약서에 ‘옵트아웃(계약 주체가 잔류 대신 계약의 소멸을 결정하는 권한)’ ‘바이아웃(구단이 계약 연장 포기를 결정할 때 선수에게 주는 보상금)’처럼 MLB에서나 볼 수 있던 조항을 넣어 깜짝 계약을 성사시킨 주인공이 바로 그다. 지난달 말 입단식에서 이 대표는 선수·단장과 나란히 앉아 기자들의 질문을 받았다. 에이전트가 선수 입단식에 동석하는 것은 국내에서는 드문 풍경이다.

서울 강남의 리코스포츠 사무실에서 만난 이 대표는 “롯데 단장님이 ‘같이 고생했으니 입단식 때 나란히 앉으면 좋겠다’고 했을 때 장난인 줄 알았다”며 “에이전트는 뒤에서 뛰는 직업이지만 그런 자리를 통해 리그 구성원으로 어느 정도 인정을 받은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고 돌아봤다. 국내 야구계에 신선한 충격을 안긴 계약 내용에 대해서는 “시장 분위기가 리스크를 최대한 피하는 쪽으로 흐르던 터라 구단·선수와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접점을 찾았다. 무엇보다 선수의 도전 의지가 크게 작용했다”고 설명했다.

계약에 이르기 전 다른 후보 구단이 어디였는지, 공개된 내용 외에 세부 계약으로는 어떤 것이 있는지 등의 추가 질문에 이 대표는 “절대 말할 수 없다”며 선을 그었다. 그는 “공개가 합의된 내용 외의 얘기를 에이전트가 외부에 흘리는 것은 선수와 구단에 대한 신뢰를 저버리는 것”이라며 “직원들에게도 소속 선수들의 얘기를 어디 가든지 절대 가십거리로 삼지 말라고 강조한다”고 말했다. 계약서 중 각별하게 비밀이 유지돼야 하는 항목은 금고에 따로 보관한다. “직업 윤리라는 말을 참 좋아해요. 일을 하다 보면 다양한 이유로 안타까운 상황이 발생할 때가 있는데 한 사람의 잘못으로 같은 직업을 가진 다른 사람들까지 피해를 볼 때가 많거든요. 직업의 특수성과 관련해 직업윤리가 필요하고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2014년 회사를 세우며 내건 핵심가치 1·2번도 투명성과 신뢰다. 이 대표는 “스포츠가 정말 매력적인 이유는 정정당당하게 실력으로 겨룬 뒤 승부를 받아들인다는 점이다. 이 일도 선수와의 소통, 파트너사와의 업무 등 모든 관계에서 가장 지켜져야 할 가치가 투명성이라고 생각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투명성과 신뢰를 위한 첫 번째 조건은 정보공유”라며 “선수가 대리인을 고용하는 이유는 단순히 돈을 더 벌기 위한 것은 아닌 것 같다. 다양한 상황에서 그때마다 옳은 선택을 할 수 있게 도와주는 역할이 크기 때문에 모든 정보를 숨김없이 알려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선수가 듣기 싫어하는 얘기를 꺼내야 할 때도 있다. 그럴 때면 이 대표는 “‘네가 내 동생이고 친구라고 가정하면 나는 이렇게 말할 것 같다’며 운을 뗀다”고 한다.

 

서울경제, 양준호 기자

기사 출처: https://www.sedaily.com/NewsView/1YYTY2FGIU